죽음도 '죽음에 이르는 병' 이 아니다

"이 병은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요,11:4) 그럼에도 나사로는 죽었다. 그리스도가 제자들이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어 있다. 그러나 내가 그를 깨우러 가겠다."(11:11)라고 한 말을 제자들이 바로 이해하지 못하자, 그는 제자들에게 직설적으로 말했다. "나사로는 죽었느니라."(11:4) 물론 나사로는 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병은 죽음에 이르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당시의 사람들에게 "그들이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을 이적"(11:40)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알고 있다. 그리스도가 나사로를 죽음에서 일으키신 이적, 그러므로 이 병은 죽음에 이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미리 말씀하신 바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기 위한(11:40) 그런 이적을 그리스도께서는 염두에 두셨다. 오오, 그러나 비록 그리스도가 나사로를 죽음에서 일으키지 않으셨다 하더라도, 이 병이 죽음 자체조차도 죽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역시 참이 아닐까? 그리스도께서 무덤에 가 소리 높이 "나사로야 나오너라"(11:43)고 외치신 것으로 미루어, 이 병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비록 그리스도께서 그런 말씀을 하지 않았을지라도 "부활이요 생명"(11:25)이신 그리스도가 단지 무덤에 가셨다는 사실 하나만이라도, 이 병은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지 않을까? 그리스도가 거기에 계시다는 그 사실이 바로 이병은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지 않을까? 또 나사로가 비록 죽음에서 살아났지만, 만일 그 소생이 결국에는 죽음의 고통을 겪으며 종말을 고해야만 한다면, 그것이 나사로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으랴. 그리스도께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부활이요 생명이 되는 분이 아니었더라면, 그런 소생이 나사로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으랴! 아니다. 나사로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기 때문에 이 병은 죽음에 이르지 않은 것이 아니요. 그가 거기에 계시기 때문에 이 병은 죽음에 이르지 않은 것이다. 도대체가 인간에게 죽음은 일체의 최후요, 도 인간적으로 말한다면 생명이 있는 한에서만 희망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적인 뜻에서 말할 때 죽음은 결코 일체의 것이 존재하고 있는 내부-즉, 영원한 생명의 내부에서의 하나의 작은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단순히 인간적으로 말해서 목숨이 있는 한에서만이 아니라, 또 그 생명이 건강과 힘에 넘쳐 있을 때에 있다는 희망보다도 훨씬 많은 희망이 죽음 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적인 면에서의 죽음까지도 '죽음에 이르는 병'은 아니다. 이른바 지상적이며 세속적인 고뇌-즉 곤궁·질병·비참·가난·재난·고통·번민·비애·원한이라 불리워지는 모든 것도 '죽음에 이르는 병'은 아니다. 그 모든 것이 아무리 견디기 어렵고 고통에 가득찬 것이며, 우리 인간이나 고통을 받고 있는 당자들이 "죽음보다 괴롭다"고 아우성칠 정도라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설사 그것이 병이라 이를 수 있는 것일지라도-결코 기독교적인 의미에서 '죽음에 이르는 병'은 아닌 것이다.

해설

키에르케고르에 대하여

Geschrieben von Sooji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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