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추억, 생각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정신이 없고 몸과 마음의 상태는 끈적거렸다. 새벽부터 게우기를 여러 차례, 맥이 빠진 채로 잠들었다 깼다를 반복했다. 토요일 하루 종일 거의 먹지 못하고 누워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하루 누워 앓는 것 쯤이야, 몸이 좀 아픈 것 쯤이야 괜찮다.

이제 정말 여름이구나, 비가 내리는 걸 보니.


지독하게도 아름답게 별이 반짝이던 여름날 밤에 집을 나왔다. 가슴이 답답해서도 아니고 싫은 일이 있던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나 자신을 피하고 싶었다. 별을 보면서 계속 걷다 보면 어디에 다다르게 될까.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많이 걸었다. 별을 잠깐씩 볼 때는 몰랐는데, 계속 바라고 있으니 정말 별이 뜨고 지는 것이 보였다. 무지개를 보러 가는 사람처럼 나는 별이 뜨는 곳을 향해 계속 걸었다. 어떤 별은 하늘 가운데에서 밝아지기도 하고, 어떤 별은 밝게 떴다가 곧 어두워지는 것도 있었다.

그땐 고등학생이었고 그다지 무서울 것이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하든, 어떤 상황이든, 이러다 만약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그걸로 느슨하게 삶을 마감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던 때니까.

새벽 즈음 해서, 시계가 없어 몇 시였는지 모르지만 해가 뜨려면 아직 한참 남은 때, 순찰차가 내 옆에 섰다. 조수석에 앉은 경찰이 창을 내리고, 밤에 왜 돌아다니는지, 뭐 하러 가는지를 물었다. 나는 친구와 늦게까지 레포트 쓰고 이제 막 끝나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대학생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 더 잘 먹힌다고 익히 친구들에게 들었다.] 책은 어딨냐는 말에, 걱정해주시고 신경써주시는 것은 고맙지만 제가 너무 피곤해서 얼른 들어가고 싶어요, 라고 말하고 지나쳐 버렸다.

날은 밝아왔고, 난 너무 많이 걸었고, 돌아가긴 싫었다. 오히려 더 멀리 가고 싶었다. 그다지 피곤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별이 보이지 않게 되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하나 샀다. 닭불갈비 맛을 좋아하는데, 이른 아침이라 내가 좋아하는 건 없고 비교적 인기 없는 전주비빔밥 맛만 남아 있었다.

공단의 건물들은 밤낮 없이 뜨거운 김을 뿜어낸다. 김은 하늘로 솟아나지 않고 사라진다.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깨끗하게 사라지는 뽀얀 김을 멍하니 바라보며 김밥을 물었다.

― 아직 첫 차 올려면 멀었어.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아저씨가 다가와 서서 말했다. 별로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시선을 돌리지도 않고 굴뚝만 바라보고 있었다.

― 버스 기다리는 것 아닌 것 알아.
― 이상한 생각 하지 마세요.

나는 꽤 퉁명스럽게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대답했다.

― 이상한 생각은 니가 하고 있는 거 아니야.
― 가던 길 가세요.
― 넌 어디로 갈건데.
― 가던 길 가라니까요.

그냥 내가 일어나면 되는 건데, 괜한 자존심에, 그렇게 하면 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 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
― 아저씨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알아요.
― 그럼 됐네. 여기서 계속 오지 않을 버스 기다리는 척 하든지.
― 하든지, 아니면 뭐요.
― 지금 일어나든지.
― 원래 그런 식으로 작업하세요?

난 계속 비아냥거렸다. 일어나 걸으면서.

The hole went straight on like a tunnel for some way, and then dipped suddenly down, so suddenly that I had not a moment to think about stopping myself before I found myself falling down a very deep well.

공단은 꽤 넓은 부지에 자리잡고 있었고 한쪽에 바다를 끼고 있었다. 바다쪽 주유소, 편의점 모두 그가 소유한 것이었다. 난 편의점에서 평일 새벽부터 아침 시간까지 있기로 하였다. 새벽 세 시부터 일곱시 까지. 그 시각엔 방문하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그 시각에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구하는 것도 힘들다고 했다.

난 주유소 건물 2층에 머물렀다. 다이얼패드에 접속하여 집에 전화를 걸고 잘 있으니 걱정 말라는 한 마디만 하고 끊었다. [나중에 어머니는 그때 나에게 휴대전화를 사주지 않은 것을 무척 후회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젠 내가 싫다. 족쇠 같으니까.]

찾아오는 손님도 거의 없는 짧은 시간, 대신 그 시간동안 바닥을 닦고 새벽에 들어온 물건을 정리했다. 창고에는 책임감 없이 가득 쌓인 물건들이 헤매고 있었다. 내가 맡은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먼저 와서, 교대하기 전에 창고의 물건들을 정리했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 왜케 그걸 집착하고 그래.

앞 타임의 오빠가 물었다.

― 답답해 보여서.
― 어차피 니 것도 아니잖아.
― 일단 내 앞에 있으니, 내것이 아니라도, 앞에 있는 동안에는 충실해야지.
― 새벽에 혼자 있는게 괜찮아?
― 괜찮지 않을 게 있나.

― 사장이 너 건들지 않아?
― 오빠나 건들지 마.

내가 홀로 머무는 방에는 다른 사람이 머물던 흔적이 있었다. 옷도 몇 벌 있었는데 사이즈가 다른 걸 보아서는 한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이 누구의 것인지 묻지 않았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밋밋한 무늬의 카키색 반팔 티셔츠와 청바지가 나에게 잘 맞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그는 그곳에 누군가 머물러야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꽤 편집적이었는데 스스로도 자기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꽤 좁고 어두운 계단을 걸어 올라 오른쪽으로 돌면 곧바로 나오는 문. 돌려서 여는 손잡이, 안에서 잠글 수 있고 밖엔 열쇠 구멍이 있지만, 잠겨있다 한들 누구라도 마음 먹으면 부술 수 있을 정도의 문. 겨울엔 외풍이 꽤 심할 것 같지만 여름엔 그럭저럭 있을만한 구조. 민무늬 벽지. 낡았지만 꽤 예쁜 모양의 등. 행거. 열면 떨어져버릴 것 같은 녹슨 프레임의 작은 창. 두 사람이 누우면 차는 바닥. 몇 개의 상자. 주인 없는 책.

[나중에 사람들로부터, 특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긋지긋하도록 들은 질문 중 몇 가지를 꼽으면, 씻는 건 어떻게 했는지, 옷은 빨아 입고 살았는지, 그런 곳에서 잠 자고 사는 것이 정말로 괜찮았는지 등이다. 하지만 그상황 되면 적절히 살게 된다. 보기에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라도 심적으로는 낭만적이기도 하다.]

인적이 드믄 편의점에 비하면 주유소에는 드나드는 차가 꽤 많았다. 공단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멀리 사는 사람들이어서 주로 카풀을 하는데 그 사람들이 들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주유구에 스티커를 붙이지 않는 것도 고정객을 모으는 방법 중 하나라고 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난 몇 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 아저씨, 나 다른 건 괜찮은데, 속옷하고 양말은 좀 있어야 할 것 같아. 다른 사람이 쓰던 걸 쓸 수가 없어.

셋일 땐 사장님, 둘일 땐 아저씨. 셋일 땐 직원, 둘일 땐 그냥 나.

기억에 보름 동안 세 번인가, 네 번인가 전화한 것 같다. 방학때 보름 정도 비우는 건 연중 행사라 그닥 걱정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적어도 그당시에는 그렇게 보였다.]

이틀 동안은 사람이 사는 곳으로 만드는 데에 날을 보냈다. 그러고 나서 구석에 쌓아둔 책이 눈에 띄었다. 시덥잖은 소설책, 그림책, 대학생들이 보는 것 같은 책 등 스물 일곱 권의 책이 있었는데 그중 표지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해러웨이의 책이었다. 다른 책들에 비해 깨끗했다. 한낮에 열기가 대단하여 문을 열어놓고 해러웨이의 책을 읽고 ― 실은 무슨 의미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호기심에 단지 한 구절씩 읽을 뿐 ― 있었는데 그가 나를 보고 멈췄다.

― 갑자기 그걸 사다 달라고 해서, 어렵게 찾아다 줬는데 그날 저녁 사라졌어.
― 전에 있던 사람?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의 말을 듣고 뒤로 넘겨 보니 출간 날짜가 이제 두 달을 살짝 넘기고 있었다.

난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도 더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지나갔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는 타입은 아니었다. 솔직히 난 그가 마음에 들었다. 있을 곳을 내어 주어서가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서 그가 마음에 들었다.

주유소에 근무하는 젊은 직원이 금고에 손을 댔을 때, 그는 그 직원을 조용히 불러다가 딱 한 마디 했다 ― "힘드냐?" 그리고는 일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 직원의 손에 얼만가의 돈을 쥐어 주는 것이었다. 그 오빠는 다음 날 봉투를 카운터에 놓고 사라졌다.

점심시간 후부터 얼마간의 애매한 시간에 주유소는 꽤 조용했다. 그 시간에는 더위를 피하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러면 보통 세 명 중 두 명은 고스톱을 치고 있고 한 명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음악을 틀어 놓고 싸이질을 하고 있었다.

― 감시하러 왔냐?

그들이 그다지 진심으로 묻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에게 하는 인사말 정도일 뿐.

― 감시 당하러 온거야.

껌 씹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엇박자 응원가에 부조화를 이루어 그날 따라 귀에 거슬렸다.

― 그런데 너는 왜 아빠한테 사장님이라고 불러?
― 사장이니까 사장님이라고 부르지.
― 집에서도 그렇게 불러?

대답은 필요 없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어이 없는 질문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들은 일하는 동안 줄창 껌을 씹어댔다. 그도 그럴 것이, 주유소에서 일하면서 담배를 피울 수 없으니 무언가를 입에 붙이고 있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것이었다.

― 야, 이런 데에서 불 나면 가장 먼저 해야는게 뭔지 알아?
― 튀는 거지.
― 당연히 튀는 건데, 어떻게 하고 튀어야는지 아냐고.
― 튀는게 튀는 거지 뭘 생각해가면서 튀냐.
― 다른 데는 몰라도 얼굴이랑 머리는 가리고 튀어야 돼.
― 도둑질 하고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왜.
― 다른 데 화상 입는 건 봐줄만 한데, 얼굴에 화상 입는 건 안 되잖아.

우연히 들은 그들의 대화. 하지만 세상에 우연이 없다는 것을 며칠 후에 깨달았다.

― 야 사장딸. 지하실엔 도대체 뭐가 있는 거야?
― 기름 탱크 있잖아.
― 거기 말고, 화장실 옆에 저쪽 계단 있잖아.
― 창고잖아.
― 다른 데는 뭐 있는지 알려주는데, 거긴 안 알려 주더라고. 보지도 못하게 하고.
― 가 봐.
― 잠겨 있으니까 하는 소리지. 뭐 있는데?
― 나도 몰라.
― 네가 왜 몰라? 너한테도 안 알려줘?
― 궁금하지도 않은데. 물어본 적도 없고.
― 그럼 좀 물어봐. 우리들한텐 절대 안 알려줘.
― 됐어. 괜한 데, 신경 끄면 편하잖아.

어쩌다가 나의 호칭이 사장딸이 되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어쨌든 그들은 나를 부를 때 그 호칭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게 사용하였다.

편의점, 주유소 사무실, 청소는 내 몫이었다. 그냥 내가 그러고 싶었다. 전부터 생각이 고리를 만들기 시작하면 집착적으로 청소를 하거나 가만히 서서 한없이 달을 바라 보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진흙덩이 만큼 굵은 빗줄기가 땅 위로 솟아 오르던 날 새벽 한 쌍의 연인이 편의점에 들렀다. 여자는 들어오지 않고 처마 밑에서 담배를 피웠고 남자가 들어와서 화장지, 음료수, 담배를 집어 계산했다. 문을 열고 나갈 때 불어 들어온 바람에 담배 향이 얼굴을 스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뉴사우스웨일즈주에 머물던 그 때, 한국식으로는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사람과 말과 감정을 배웠다. 어른들이 the hell을 말하지 못하게 하자 대신 on the hill을 붙여 말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가득했고, 저녁에 모여 이야기할 때에는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그녀석이 나에게 키스하던 날 그에게선 담배 냄새가 났다. 그는 모든 것을 주었고 나는 모든 것을 받았다. 부모님이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당장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첫 남자의 추억은 그걸로 끝났다. 지금 같으면 이메일이라도 알아 두었을텐데, 그땐 이메일도 없던 시절이었으니.

방학도 없이 이어지는 한국의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규 수업만 듣고 오후에 남지 않았으며 방학에는 아무런 수업도 듣지 않았다. 대신 오후에는 홀로 온곳을 걸어다녔고, 방학에는 집을 나가서 한참씩 헤맸다.

비가 계속 내렸고, 아침에 방으로 돌아왔을 때에도 세상은 어두웠다. 깊은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수면 위로 떠오른 쓰레기처럼 아름다운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빗소리로 고요해진 공간에 숨결을 녹이며 스스로의 몸을 위안했다. 나는 여신보다는 차라리 사이보그가 되겠다, 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온 세상이 비에 완전히 젖었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 창틈으로 연기가 스며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이번엔 진짜 불이다. 빨리 나가지 않으면 지하탱크가 폭발할 것이다. 느슨한 죽음 따위 생각나지 않았다.

행거에 걸어둔 젖은 수건과 옷가지로 얼굴을 가리고 상체를 덮었다. 방에서 나가서 왼쪽으로 일곱 걸음, 다시 왼쪽으로 돌아서 스무 계단 내려간 다음 세 걸음, 다시 스물 다섯 계단, 그리고 출구. 마음 속으로 한 번 생각하고 달렸다.

젠장 출구 문이 열리지 않아. 분명 유리문인데 깨지지도 않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깬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깬 것 같기도 하다. 어렴풋이, 마구 소리를 질렀던 기억, 누군가 내 손을 잡았던 기억, 내리는 비에 곧 내 몸의 불이 꺼진 기억.

다리에 심하게 화상을 입었고, 보름 넘게 입원해 있었다. 포피가 떨어져 나갔고 흉터가 남았다. 포피가 떨어져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퇴원했다. 다들 말렸지만, 병실에서 미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다. 오른손 깁스를 풀기까지도 꽤 시간이 필요했다.

치마는 겨울에만 입을 수 있다. 검은 스타킹에 내 기억을 가릴 수 있으니까. 봄부터 가을까지는 청바지나 면바지, 그리고 정장을 입을 때에는 치마 대신 정장 바지. [하긴 교육실습 할 때 왜 나는 치마를 입지 않냐고 묻는 학생들이 꽤 있었지. 그래도 팔에 주사바늘 자국이 가득해서 반팔을 입지 못했던 선배보단 내가 낫다고 생각한다.]

종종 사람들이 다리의 흉터를 보고 욕하는 것 같은 환각을 느낀다, 심지어는 나 혼자 있을 때조차도. 그래서 집에 있을 때에도 허리까지 올라오는 스타킹을 신거나 딱 붙는 청바지를 입고 있어야 안정이 된다. 의사는, 피부 건강을 위해 집에서는 다른 것에 닿지 않게 하라고 했지만, 모르겠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고 잠을 잘 수도 없는 걸.

주유소 화재는 다행히 불이 저장 탱크에까지 옮겨붙지 않고 진화되었다고 한다. 입원해 있는 동안 경찰이 몇 차례 드나들었고, 난 퉁명스레 딴소리만 해댔다. 그들은 매번 나에게 미친년이라고 하며 돌아갔다. 화재의 원인은 결국 밝혀지지 않았고, 그와 나와의 관계도 대충 뭉개진 채 끝났다.

두 번째 남자도 끝났다.


글을 쓰는 동안 비가 그쳤다. 추억들도 사라졌다.

Geschrieben von Sooji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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