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글을 쓴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자기 자신도 몰랐던 생각이 글에 녹아 나와버리기 때문이다.
이상의 시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그의 시를 이상하고 난해하고 이해할 수 없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굳이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사람들은 무언가를 분해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기존의 방식대로 그것을 분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분해한다고 하더라도 무언가에 대하여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다. 분해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난해하다고 말하기보다는 분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이상의 시는 자동기술법으로 쓰인 것이 많다고 한다. 자동기술법이란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라고 한다. 자동기술법은 무척 낯선 용어처럼 들리지만 사실 오늘날 사람들이 블로그나 온라인의 게시판에 글을 작성할 때 자동기술법으로 작성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 낮에는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놓아둘 여유가 없다. 생각이 조금 흘러간다 싶으면 다른 것들이 외부에서 들어와버린다. 그러나 밤에는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놓아둘 수 있다.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적다보면 평소에 끊겨서 결코 다다를 수 없었던 곳까지 가기도 한다. 그곳은 내 마음 속에 줄곧 있었으면서도 나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곳이다.
언어는 사고를 확장시키는 동시에 사고를 제한한다. 만약 사람이 전달매체에 의존하지 않고 생각을 직접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다면 언어라는 것이 필요했을까? 그런 상황에서 언어가 존재할까? 그렇지 않다. 에너지가 전달되기 위해서 어떤 방식이 필요한 것처럼 생각이 매체를 타고 전달되기 위해서는 형태가 필요하다. 그것이 언어이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그대로 전달된다면 언어는 필요하지 않다. 생각만 하면 된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는 자신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구분되지 않으므로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어떤 생각이 자신의 것이었는지 다른 사람의 것이었는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어쩌면 우리의 머릿속에는 여러 명의 사고체가 존재하지만 그것들 각자가 생각하는 것이 서로에게 즉시 그리고 변형 없이 전달되기 때문에 서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개별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한 사람이라고 느끼고 사고하지만 그것은 사실 몇 사람의 사고인지 알 수 없다.
좌뇌와 우뇌가 서로 연결되지 못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자기 머릿속에 다른 사람이 있다고 느낀다고 한다. 그들이 그렇게 느낀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과연 머릿속에 "나"라는 한 명의 존재만 담고 있는 것일까?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의 또다른 생각을 발견하는 일이다. 자신과 대화하는 방법이다. 박미라의 "치유하는 글쓰기"를 읽어보면 글쓰기를 통한 자신과의 대화, 그리고 그것을 이용한 자신의 심리 치유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 말한다는 것은 타인에게 말하는 것의 연장일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Geschrieben von Sooji Shin